작품이 아닌 행위 자체를 예술로 선언한 새로운 표현
퍼포먼스 아트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술이 더 이상 고정된 오브제나 조형물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가의 몸과 시간이 직접 예술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급진적인 실험을 통해 탄생한 표현 형식이다. 이 양식은 작품이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자 ‘행위’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예술의 범위를 시각적 재현에서 생생한 체험으로 확장시켰다. 퍼포먼스는 회화나 조각처럼 보존되거나 반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한 번 발생하는 사건이며, 관객과의 상호작용, 즉각적인 반응, 우연성, 위험성, 물리적 고통까지도 예술의 일부로 포함시킨다. 이러한 특성은 예술의 탈물질화 경향과 맞물리며, 감상자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현장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미학적 변화를 유도한다. 퍼포먼스 아트는 동시에 연극, 무용, 음악, 사회 운동, 신체 행위 등과 결합하며 장르 간 경계를 허물었고, 이는 미술이 더 이상 특정 매체나 기술에 제한되지 않고, 예술가의 의도와 존재 방식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현대미술의 인식 전환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퍼포먼스는 기록, 사진, 영상, 구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만 간접적으로 보존되며, 그 본질은 여전히 현재성과 비가역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실험적 예술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비토 아콘치, 오노 요코가 보여준 신체의 예술화
퍼포먼스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리듬 0’에서 관객에게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며, 관객의 윤리 의식과 폭력성, 권력 구조를 실험하는 충격적인 행위를 예술로 제시하였다. 그녀는 이후에도 장시간 무언으로 마주 앉는 'The Artist is Present' 같은 퍼포먼스를 통해 감정의 교류와 존재의 밀도를 예술의 주제로 확장하였다. 비토 아콘치는 자신의 몸을 바닥에 숨긴 채 관객의 움직임을 따라가거나, 자위를 수행하는 등의 도발적인 작업을 통해 신체와 성,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그의 작업은 예술이 타자와의 관계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제시한다. 오노 요코는 ‘컷 피스(Cut Piece)’라는 작품에서 무대 위에 앉아 관객이 그녀의 옷을 가위로 잘라내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여성의 몸, 타인의 시선, 권력과 젠더의 문제를 예술의 핵심 주제로 끌어들였다. 이들의 작업은 회화나 조각처럼 눈으로 보는 감상에서 벗어나, 실제 경험과 행위를 통해 예술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였으며, 신체의 취약성, 감정의 밀도, 시간의 흐름이 예술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이들은 모두 예술가의 존재 자체를 예술로 치환하며, 예술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끝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였다.
현대 예술, 사회운동, 디지털 퍼포먼스로 이어진 퍼포먼스의 유산
퍼포먼스 아트의 유산은 현대 예술 전반에서 강하게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사회운동, 젠더 정치, 환경 문제, 소수자 인권, 집단 기억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예술적으로 발화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 퍼포먼스, 퀴어 퍼포먼스, 인종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행위 예술 등은 사회적 메시지를 몸과 행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강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퍼포먼스는 이제 물리적 현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도 확장되고 있으며, SNS나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퍼포먼스를 공유하고 관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퍼포먼스의 본질인 ‘현재성’과 ‘관계성’을 더욱 다층적으로 실현하게 하였고, 오늘날의 예술은 점점 더 참여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더불어 퍼포먼스는 예술 교육, 심리치료, 커뮤니티 예술, 공공예술 등의 영역에서도 활용되며, 예술이 사회적 치유와 공동체 경험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결국 퍼포먼스 아트는 예술을 감상에서 참여로, 재현에서 실재로, 물질에서 행위로 전환시킨 역사적 실험이었으며, 예술이 현실에 개입하고 감각을 흔들며 존재를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방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